고등학교 시절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본 미국의 경제 번영과 그 이면에 심화된 빈부격차 현상을 바탕으로 논설문을 작성하였다.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던 소설이라 작가인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하여 궁금하여 조사하던 중 평소 관심있던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란 사실을 알게 되고, 항상 연관되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나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만 알고 있던 헤밍웨이가 궁금하여 탐구하게 되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년 ~ 196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수렵 등 야외 스포츠를 좋아하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심이 돈독한 여성이었다. 고교시절에는 풋볼을 할 정도로 키가 크고 마초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제1차대전에 운전병으로 참전하여 전쟁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마초적인 성향과 전쟁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잘 표현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태양는 또다시 떠오른다>, < 무기여 잘 있거라>, <오후의 죽음>,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특히 <노인과 바다>로 그는 1953년 퓰리처상을 받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친구에서 적으로
피츠제럴드는 1896년 9월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보다 3년 뒤인 1899년 7월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에게 애증을 가진 친구이자 경쟁자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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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20년대의 파리에서였다. 그 무렵 피츠제럴드는 유명 인사에 속했다. 이미 세 권의 소설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위치를 단단히 굳힌 상태였으며, 대표작인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이에 비해 헤밍웨이는 소품집 두 권을 제외하고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책을 한 권도 내놓지 못한 무명 작가에 불과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헤밍웨이를 발굴해 자신의 전속 출판사인 스크리브너스와 유명한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게 소개했고, 그가 명실상부한 작가로 발돋움하도록 글 쓰는 일까지 내팽개친 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헤밍웨이의 첫 작품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성공을 거둔 데에는 그의 공이 아주 컸다.
이렇듯 한쪽은 주고 한쪽은 받는 관계로 출발했던 두 사람의 우정은, 동료 작가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던 시기는 잠시뿐, 가학과 피학의 관계로 치닫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8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건장한 체격, 그리고 흑발에 호남형이었던 헤밍웨이와 172센티미어의 키에 65킬로그램을 밑도는 깡마른 체격에 금발인 피츠제럴드는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외모만큼이나 기질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마초적인 성격의 헤밍웨이와 섬세하고 세련된 피츠제럴드의 판이한 성격과 삶의 태도, 그리고 각자의 기질을 반영한 작품 경향이나 문체 등 여러 가지 차이점이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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