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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피어 - 워프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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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어-워프 가설은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인 가설이다.

 

<사피어의 가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주장6세기 인도의 시인 바르트리하리가 했었고, 그 이후 인도에서 논의가 되어 왔었다. 빌헬름 폰 훔볼트 역시 비슷한 주장을 그의 수필에서 한 적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보통 이해하는 것처럼 사회활동의 세계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표현 수단이 되는 특정한 언어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응할 수 있고 언어는 의사전달이나 사고의 반영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우연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사실인즉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 우리의 공동체의 언어습관이 해석에 대한 어떤 선택의 경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처럼 주로 보고 듣고 아니면 경험을 한다.”

에드워드 사피어, 언어(1929)

 

에드워드 사피어는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고까지 얘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워프는 사피어의 생각을 발전시켜 대담한 가설을 세웠고 이것은 피쉬먼을 비롯한 많은 사회언어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이런 류의 생각은 조지 오웰의 1984등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워프의 검증>

워프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하여 이 가설의 신빙성을 높였는데 그에 의해 제시된 유명한 예는 이누이트어의 눈(snow)에 관한 것이다. 이누이트어에서는 눈(snow)내리는 눈(falling snow), 바람에 휩쓸려온 눈(wind-driven snow), 녹기 시작한 눈(slushy snow), 땅 위에 있는 눈(snow on the ground), 단단하게 뭉쳐진 눈(hard-packed snow)’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이는 눈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반면 이누이트어와 다르게 영어에서는 '(snow)'이라는 한 가지 표현밖에 없다.

 

워프는 각 집단의 어휘의 차이뿐만 아니라 문법적 차이가 각 언어의 차이를 더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미국 인디언 언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는 영어, 불어, 독일어 등 인도유럽어와 같은 언어구조와 Hopi어의 구조를 대조하였는데, 대조 결과 SAE(Standard Average European)의 범주들은 화자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향한 고정된 방향을 주는 반면 Hopi어의 문법범주는 세계에 대한 과정방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발견해 내었고 이러한 차이들이 Hopi어와 SAE의 화자들이 세계를 서로 다르게 보도록 해준다고 믿었다.

 

사피어-워프 가설의 예시

 

조지 오웰 <1984>

오웰이 쓴 <1984>는 전체주의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은 사방이 텔레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있고 모든 일상이 녹화된다. 조그만 목소리의 대화도 국가에 감시당하고, 미셸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panopticon·발달된 정보기술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체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49년 집필 당시 오웰이 그린 미래사회는 전 세계가 오세아니아·유라시아·동아시아의 세 나라로 통일돼 있다. 모두 독재 권력이 주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인 것이다. 주인공이 사는 오세아니아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곳으로 새말(newspeak)’이라는 신어를 쓴다. 언어를 통해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 통제하는 감시사회의 결정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새말에는 먼저 체제를 비판하거나 대안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free’라는 말은 있지만 설탕이 없다(sugar free)’는 식으로 사용될 뿐, ‘자유의지(free will)’사회적 자유(social freedom)’ 같은 표현은 없습니다. 오웰은 책의 마무리에서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으니 나중에는 새로운 생각 자체를 못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움베르트 에코의 <원형의 파시즘>

(1932~2016). 30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호학자. 예술과 역사·철학을 넘나드는 그의 필력은 첫 소설인 장미의 이름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학문과 저작 활동을 통해 평생을 독선과 파시즘에 맞서 싸웠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가 그랬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선전·선동에 능하도록 짧고 간결하며 직관적이었습니다. 유년시절을 무솔리니 치하에서 보낸 움베르트 에코는 <원혀의 파시즘>에서 파시즘은 복잡하고 비판적인 추론의 도구를 제한하기 위해 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문법을 사용했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말은 사고의 틀과 내용을 규정합니다.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는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드러내는 복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가 생각을 형상화하고 실재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원래 사소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름을 붙이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김춘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의 학계의 반응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워프 가설에 대해 언어가 미치는 통제의 정도 차이에 따라 강한(strong)’ 해석과 약한(weak)’ 해석으로 나눈다. 강한 해석에 의하면, 사람들의 인지 범주는 그들이 말하는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고 약한 해석에 의하면 사람들의 행위는 상황에 따라 그들이 사용하게 되는 언어의 언어 범주에 의해 지배받기 쉬울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과 더불어 워프의 가설과 그를 입증하는 증거에 대해 학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있었다. 학자들은 유럽언어와 워프가 인용한 북미 토착 언어 사이에는 실질적인 차이성이 있으나, 이러한 차이성이 반드시 각 언어 화자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깊은 차이성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피어 워프 가설에 대한 가장 타당한 주장은 이 가설이 기본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음의 말은 현재의 학계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

 

오늘날 우리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전적으로 수용하지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거부하지도 않는다.”

맥코맥, (1997:4)

 

현재 워프의 이러한 가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워프의 가설은 기본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통된 문화를 공유하는 일은 흔히 관찰된다. 또 어떠한 개념이라도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어휘가 없을 뿐이지 돌려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지 그 어휘의 존재 유무는 필요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어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주류는 이런 언어결정론을 부정한다. 사람의 생각은 그가 쓰는 자연언어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까지 판단하는 이론가도 있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인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가 그 예다. 핑커에 따르면, 사람은 영어나 중국어나 아파치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언어’(language of thought)로 생각한다. 사고의 언어는 모든 자연언어들에 선행하는 메타언어다. 핑커는 자연언어들로부터 독립적인 이 추상언어를 멘털리즈'(mentalese)라 불렀다.

 

핑커의 이런 견해는 모든 자연언어가 심층구조에서는 동일한 문법을 지녔다는 촘스키 이후 언어학자들의 생각과 통한다. 이런 보편문법이나 멘털리즈를 상정하는 한, 지각의 근본적 범주와 인식작용은 인류에게 종()보편적이고, 따라서 자연언어들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표면구조로부터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출 처 : 위키백과 <사피어-워프 가설>

중앙일보 (윤석만의 인간혁명) 언어와 사고

한국일보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 사피어, 워프 가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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