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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야만인을 기다리며 _ 문명이 만들어낸 괴물 ;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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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은 문명이 만들어낸 제국주의자들의 거칠고 잔인한 태도를 다층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복종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새 시대를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태도와 방법이 올바른 것인지...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줄거리

이 소설은 한 문명인 치안판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큰 줄거리는 어느 제국의 평화로운 도시에 군대가 파견되고 그들은 도시 너머의 야만인들을 잡아 들이고 고문한다. 그 도시를 통치하는 치안판사인 는 고문 후유증으로 눈이 먼 젊은 야만인 여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보살핀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던 그는 그녀를 그녀의 부족들에게 돌려보내고자 긴 시간을 여행하고 돌려보내고 온다. 하지만, 치안판사는 야만인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치욕을 겪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치안판사의 눈을 통해 식민주의가 벌이는 억압과 국가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폭력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느낀점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제국주의자들이 도시 밖의 사람들을 야만인이라 칭하고, 적으로 간주한다. 본인과 같은 문명인이 아니면 야만인이라 칭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볼 수가 있다.

또한, 주인공인 치안판사 또한 이분법적 사고의 또 다른 표현이다. 결국 그가 지식인이고 선인일 수도 있으나 그 역시도 제국의 관리로서 이러한 과정에 동참한 이이자 결국 제국의 폭력에 몰락하는 한 나약한 개인이기도 하다. 선함을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개인적인 탐욕으로 움직이는 이가 아닐까, 그렇게도 의심되기도 한다.

소설에서 제국은 문명을 지칭하고 문명은 제국이 가진 체제와 문학 그리고 권력이 미치는 영역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문명의 시각 반대편에는 야만인이 자리한다.

어쩌면 작가는 내가 옳으면 상대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에서 벗어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라고, 다르다고 옳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분법적 사고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의 가능성에 한정하여 사고하는 오류. 예를 들어 나는 여당이 싫지는 않다.”는 진술을 그렇다면 여당을 좋아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당에 대한 여러 태도가 있을 수 있음에도 좋거나 싫은 두 가지만으로 한정하여 사고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와 방법

흑백논리로 설명되는 이분법적 사고는 옳거나 그름으로부터 비롯된다. 즉 어떤 생각이나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지, 혹은 현실적으로 타당한지를 따진다. 그래서 찬반 투표를 하거나 ‘OX’ 답변으로 판단한다. 이때 모든 사람이 이의 없이 한쪽으로 쏠리면 그것은 상식이 되지만, 6 47 3 비율로 한쪽이 득세하면 대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항상 정의로운지는 다른 문제이다. 정의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 편 네 편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앞으로는 다()분법적 사고로 내 의식과 마음을 확장해 낯선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갖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야 한다. 남을 이해하고 다른 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도록 하여, 자기 안에 더 많은 이질성을 공존시키고, 더 많은 것에 공존하는 존재로 사고의 다양성을 키워야 할 것이다.

 
 
 
 

참고문서 : <야만인을 기다리며> (J.M.쿳시, 문학동네)

                  공포와 증오로 지키려는 건 무얼까 (강대호, 오피니언뉴스)

                  네이버 국어사전 (이분법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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