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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한국의 낭만주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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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낭만주의 배경

한국에서는 1920년대 초에 3.1 운동이 실패로 끝난 암울한 정서를 바탕으로 감상적이면서 퇴폐적인 낭만주의 문학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이상화가,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동인이 있다.

한국의 낭만주의 특징

한국 낭만주의 문예의 근원은 [백조] 이전의 동인지 [폐허]에서 찾는 게 타당할 듯하다. 191931운동 이후 사회현실에 절망한 당시 식민지 지배하의 문인들은 허무감과 폐허감에 빠져 때마침 소개된 보들레르와 뭬세류의 세기말적 병과 일면 러시아의 우울 문학에 감염되어 이른바 퇴폐주의 문학을 이룩하게 된다. [폐허] 권두언에서 염상섭은 폐허의 재건을 부르짖고 또 편집후기에서는 김억이 같은 내용을 적고 있지만, 구호와는 달리 여러 시인들, 특히 오상순ㆍ황석우 등의 작품이 짙게 허무적ㆍ퇴폐적ㆍ유미적 색채를 띠어 낭만주의문예의 발상지로 변신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의 낭만주의 문학은 근대의 여러 사조가 뒤섞여 도입되었기 때문에 그 성격이 뚜렷하지 못하나,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듬해부터 [폐허](1920), [장미촌](1921), [백조](1922) 등의 문예지를 통해 전개되었다. 황석우, 오상순, 김억 등이 주동이 된 [폐허]는 사조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 없이 막연한 대로 세기말적 데카당 기분으로 퇴폐주의적 문학운동을 전개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신생 혹은 부활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문학에 속하는 것이었다.

특징 : 꿈과 미지의 세계, 신비의 세계를 동경, 애상적ㆍ공상적ㆍ감상적ㆍ퇴폐적 감상, 주관적 정열ㆍ격정

사적 배경

   (1) 31운동으로 인한 민족적 울분, 저항과 좌절, 의지와 허탈의 상태

   (2) 예술적 풍토의 미비

   (3) 외래 사조(사실, 낭만, 퇴폐, 상징, 허무 등)의 혼입

경향

   (1) 자유시 형식

   (2) 국어로 시를 쓰려는 노력이 현저함

   (3) 퇴폐적 감상(感傷)에 병듦

   (4) 주관적 감정 속으로만 파고 듦

   (5) 정열과 의욕이 앞섬

작가 : 김억, 주요한, 황석우, 이상화, 박종화, 홍사용 등.

의의

   (1) ‘시가 그 뿌리를 어디에 뻗쳐야 하며, 어떻게 숨쉬어야 하는가를 다소 깨달음

   (2) 문단이 형성됨

   (3) 문단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재질에 의해 특출한 작품을 발표한 만해 한용운과 소월 김정식을 얻은 점.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시인 홍사용은 17세에 휘문의숙에서 3.1운동에 체포되었다가 3개월 뒤 풀려났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에서 감상적이면서 민족주의적인 주제의식을 가진 장시와 민요시를 창작했다.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나는 왕이로소이다,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봄은 가더이다등이 대표작이다. 시작 활동 외에 소설, 평문, 희곡을 쓰기도 했다. 1947년 지병으로 별세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홍사용의 대표작으로, 19239월호 백조에 발표되었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은 소리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 둑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坎中連)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에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전집, 타라북스, 35~36

 

눈물의 왕인 까닭은 설움이 있는 땅의 왕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한탄으로 해석된다. 민족의식을 담고 있는 비애와 감상적 서정이 특색이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당시 백조 동인들의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대표한다.

 

마무리하며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의 전역에 펼쳐졌던 문학사조로서의 낭만주의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 변화에 따른 급격한 변화로 사회 분열과 이기주의 만연에 따른 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 혁명을 통하여 드러난 인간의 취약한 면을 보고 절망하며 이러한 정신을 심성에 맞게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하는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어서, 이성보다는 감성, 합리성보다는 비합리성, 감각성보다는 관념성을 훨씬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낭만주의 특징은 191931운동 이후 사회현실에 절망한 당시 식민지 지배하의 문인들은 허무감과 폐허감에 빠져 발생한 문학 기조로 출발점에서 차이점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31운동으로 인한 민족적 울분, 저항과 좌절, 의지와 허탈의 상태로 저항과 분노의 마음이 느껴지며, 특징으로는 자유시 형식이며, 국어로 시를 쓰려는 노력이 현저했다.

또한, 퇴폐적 감상에 병들고, 주관적 감정 속으로만 파고드는 등 정열과 의욕이 앞선 느낌을 받았다.

기존의 형식에 대한 반론으로 나타난 문학사조인 낭만주의는 지역별, 국가별 발생 원인에 따라 표현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문학이 그 시대의 자화상임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1.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2. 한국문화원연합회 문예지 백조를 만든 시인 홍사용

3. 위키백과 <낭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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