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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회적 낙인 작가들의 윤리적 쟁점과 작가의 고뇌 (D.H. 로렌스와 채만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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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한동안 코로나, 원숭이 두창에 걸린 사람을 차별의 눈으로 보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낙인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을 제공한 고프먼(Goffman, 1963)에 따르면, “낙인 또는 사회적 낙인이란 어떤 개인을 완전하고 평범한 속성을 부정하고, 더럽혀지고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축소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사회적 낙인은 사실과 다르게 다른 관점에서 다수가 소수를 보는 눈일 수도 있다.

영미문학시간 사회적 낙인을 주제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를 수업하면서 현재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낙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국어 3단원 채만식의 <미스터방>, 영미문학 D.H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생활윤리 1단원 현대의 삶과 실천윤리 단원과 융합하여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작가들을 중심으로 탐구하고자 한다.

탐구된 내용을 근거로 현대인의 삶과 다양한 윤리적 쟁점들에서 동양의 채만식과 서양의 D.H. 로렌스를 동서양 문화의 중심으로 비교하고 작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본론

성 묘사와 불륜으로 30여년 외설 도서가 된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자전적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은사의 부인과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 D.H.로렌스는 도덕적 결함으로 당시에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작가이다.

또한, 한국 문학사에서 <탁류>로 유명한 채만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된 친일 작가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작가이다.

두 작가의 도덕적 결함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작가였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태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품 속에 표현되고 있다.

 

01. 남의 아내를 가로챈 D.H.로렌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출판 당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무려 30년여간 출판 금지를 당했던 소설이다.

광부의 아들로 1885년에 태어난 로렌스는 아버지와 달리 교육을 많이 받았던 어머니 덕분에 어려운 살림에도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가난한 생활 탓에 평생직장에 대해 걱정하던 그는 안정된 교사직을 하면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런던 대학에 합격한다. 하지만 돈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노팅엄 사범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교수 부인인 프리다 폰 리히트호펜을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다.

당시로서 아이들까지 버리고 사랑을 택한 그들의 행동에는 많은 비난들이 쏟아졌고 엄격한 규범을 강요하던 당시 사회에서 그들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이후 생활이 편했을 리 없다. 로렌스는 가난했고 앞날도 보장되지 않았으며 게다가 결핵까지 앓고 있었다.

1914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이후에도 돈벌이가 되지 않는 책 때문에 그들은 후원자를 찾아 방랑해야 했다.

세계 제1차 대전때는 간첩으로 오인받기도 하고 1915년 출간한 소설 <무지개>도 외설 시비로 금서가 되고 만다.

그들은 세계를 떠돌면서 여행기와 에세이를 썼고 1920<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소설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리고 1916년부터 1928년까지 써 내려간 작품이 앞에서 언급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다.

고상한 숙녀인 한 여성이 평민 출신의 동물 보호사를 만나 그를 통해 성적인 만족을 얻으면서 자신을 해방시켜 나가는 이 소설은 그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에게 사랑은 추상적인 낭만이나 관습이 아니라 자연적인 본능이며 인간의 신비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결코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주 싸웠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로렌스에게 프리다는 그의 작품 활동에 힘을 실어 주는 삶의 원천이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도피생활은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병을 얻게된 로렌스는 점점 병이 악화되어 마침내 요양소에 들어가야 했다.

더욱이 말년에 로렌스가 폐결핵으로 마침내 성 불능에 이르게되자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려는 프리다의 태도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프리다는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숱한 고생과 사랑의 흔적을 뒤로 하고 영국으로 떠나 버린다. 타국 땅 프랑스에 홀로 남은 로렌스는 마지막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가슴에 안은 채 스승의 아내를 가로채 달아난 남자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외롭게 숨을 거두었다.

프리다는 로렌스가 죽은 후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 가운데 하나였던 ·미들던·머리와 세 번째 결혼을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프리다의 일면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

타국 땅 프랑스에 홀로 남은 로렌스는 마지막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가슴에 안은 채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려고 고투한 작가이다. 그는 스승의 아내를 가로채 달아난 남자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외롭게 숨을 거두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택한 그들.... 과연 행복했을까?

 

<채털리 부인의 사랑>

나는 내 책과 내 입장을 고수한다.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룰 때, 이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균형이 유지될 때, 그리고 정신과 육체가 서로를 자연스럽게 존중할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는 입장을 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외설이니 포르노니 하면서 재판까지 갔던 그 소설이 80년을 살아남아 지금은 고전이 되었다. 남편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나서는 여인, 산업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결혼과 이혼에 대해 당시의 관습을 뒤집는 묘사, 섹스가 이 멍든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불륜에 대한 응징이 아닌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는 열린 결말.

이런 이유로 여태 많은 이들로 사랑을 받고 있다.

<아론의 지팡이>

이 소설의 전반부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용 유리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셔지는 폭력적인 장면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면은 가정이라는 틀에 대해 회의하는 주인공 아론 시슨의 심리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가 가정을 져버리고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문제시하는 바는 가정을 져버리는 한 가장의 도덕성 범주에 한정되어 있다기보다는 한 인간이 자신의 뿌리인 가정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02. 친일 행적을 한 채만식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답게 잦은 검열 기준을 넘나드는 풍자적 성향의 작품을 다수 발표한 그는 40대 후반에 사망해 작품 활동기가 길지 않았음에도 대표적 다작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 희곡, 동화, 수필, 평론 등 2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작품의 양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채만식은 동시대 작가 위에 도도하게 군림하였다.

광복 후 자전적 성격의 단편 민족의 죄인(1947)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변명했으며 이 때문에 자신의 친일 행적을 최초로 인정한 작가로 불린다.

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로는 194410월부터 19455월까지 총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여인전기>2006년에 새롭게 친일 소설로 확인된 <아름다운 새벽>이 있다.

<여인전기>

채만식은 194410월부터 19455월까지 <매일신보>에 장편소설 <여인전기>를 연재했다.

옥동댁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역정을 다룬 <여인전기>의 경우 친일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총후조선 여인이 본받아야 할 내지’(일본) 여인의 올바른자세를 소개하면서 전쟁 동원을 위한 조선 여성의 반성과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내지의 어머니들은 2600여 년을 두고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아들네를 전지에 내보내되, ()치 아니하도록 도저한 도야(陶冶)와 훈련과 그러고 자각 가운데서 살아 내려왔다.……. 여러 백 년을 나라와 나라 위할 줄을 모르고 오직 자아본위, 가정 본위, 오직 일가족속 본위로만 살아온 조선 백성은, 따라서 어머니들의 군국에 대한 정신적 준비랄 것이 막상 충분치가 못하였다.”

 

<아름다운 새벽>

채만식은 <매일신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아름다운 새벽>에서는 전후방 구별이 없는 일제 침략전쟁에서 내지인과 힘을 합쳐 전력을 다해 싸우는 조선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일본인들의 정신주의를 찬양하면서 조선인도 그를 본받자고 선동했다.

“(……) 새삼스럽게 내선일체를 운위할 것도 없이 조선 사람은 닛본징(日本人)’이다. ……하루바삐 명실(名實)을 다 같이 추호도 다름이 없는 닛본징이 되어야 한다. 그러하여야만 조선 사람으로서의 닛본징인 도리를 다함이려니와 동시에 닛본징으로서의 조선 사람이 진정한 행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새벽’(<매일신보>1942.2.19.) 중에서

 

<민족의 죄인>

1946년에 쓴 민족의 죄인은 채만식의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이다. 그는 친일활동으로 말미암아 해방 후 고뇌에 빠졌고, 그래서 스스로 '민족의 죄인'이라 여기고 글을 쓴 것이다.

소설의 장면 중에 작중화자인 ''의 참회가 나온다. 먹고살기 위하여 대일협력을 한, 대일협력 딱지를 뗄 수 없는 자신을 창녀에 비유하였다. 한 번 몸을 망친 여자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숫처녀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다음의 독백은 바로 이러한 심회를 절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정강이께서 도피하여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 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나의 두 다리에 신겨진 불멸의 고무장화였다. 씻어도 깎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식'이었다. 창녀가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그의 생리(生理)가 숫처녀로 환원되어지는 법은 절대로 없듯이.

 

이런 아픈 참회를 하면서도 채만식은 소설의 중심인물인 김군의 입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신문기자가 신문을 맨드는 건 대일협력이고 농민이 농사해서 왜놈과 왜놈의 병정이 배불리 먹구 전쟁을 하게 하게 한 건 대일협력이 아닌가?"

하고 반문함으로써, 우리민족 전부가 어떤 점에서 본다면 모두 친일에 협조한 것이 아니냐, 다시 말해서 '민족의 죄인'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03.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소설 속 자화상

D.H.로렌스와 채만식은 현재의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과오가 있음이 분명하고, 사회적 낙인이 찍혀 당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에 대한 대응 방안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D.H.로렌스는 비록 은사의 부인과 불륜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지만,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보다, 인간성 회복이 우선이었다.

그는 작품에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애정 문제야말로 현대문명사회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폐결핵으로 아내 프리다가 떠난 후 집필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표현된 성묘사는 로렌스가 프리다에게 못해 준 애정문제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채만식은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광복 후에는 <민족의 죄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한 변호와 반성을 보여줬다.

채만식이 사회적 지탄을 받기 전에 지은 죄를 스스로 반성했다는 사실은 그의 도덕적 고뇌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친일 작가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것과 대조적인 것이다.

 

3. 결 론

윤리적 쟁점과 작가의 고뇌

생각이 다른 사람 괴짜인 사람을 제거하면 사회는 무미건조 해지고, 사람들은 여론의 자의적 판단을 두려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애플바움-

어떤 사람에게 심어진 부정적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바로 낙인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낙인으로 시작 되었지만, 그것이 평생을 옥죄는 운명이 될 수 있을지도 결국 본인이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두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과오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였다.

D.H.로렌스는 인간의 감성과 인간 관계의 소중함이 현대인이 나아가야 할 삶의 모습이라 하며 인간성을 고뇌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채만식은 사회적 지탄을 받기 전에 지은 죄를 스스로 반성함으로써 그의 도덕적 과오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자신을 억누르던 사회의 굴레가 없어지면서 두 작가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다. 사회를 폭로하면서 동시에 개인과 자유에 대한 찬가를 드러낸 시대를 앞선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회적 관습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치부할 순 없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대로만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욕망은 어느 순간 절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들을 오히려 지나치게 억압한다면 그 대상이 실제로 더 나쁜 행태를 보이게 된다.

소설은 부당하게 억눌린 욕망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예술 장르이다. D.H 로렌스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철학을 드러내며 관습 속에 억눌린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였다.

사람들이 D.H. 로렌스의 소설을 즐겨 읽는 까닭은 과도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어쩜 우리는 뻔뻔한 작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동서양 문화차이를 이해해야 글로벌 소통 가능

두 작가가 자신의 과오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지만,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이다 라고는 없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사회적 차이라고 생각한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 교수는 동양은 자신(self)’을 타인과의 관계로 보고 서양은 각 개인의 내면적 속성으로 본다는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라고 하였다.

다문화 사회,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원활한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참고문헌

출처:

1. D.H. 로렌스의 문학과 성 -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중심으로. (안필규, 강릉대학교)

2.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 나타난 현대 문명 비판과 삶의 비전. (윤수정, 한국교원대)

3. 상징주의적 재현 파괴: D. H. 로렌스의 아론의 지팡이 (박시영, 이화여자대학교)

4. D.H.로렌스의 <사랑하는 여인들>에 나타난 현대문명 비판 (양영수)

5. [책 이야기] 이게 외설이라고? D.H. 로렌스<채털리 부인의 연인>

(https://sandeulkang.tistory.com/entry/)

6. 채만식 문학의 친일성 - 여인전기에 나타난 친일성의 정체 (한지현)

7.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건국60주년 60일 연속강연] (3) 최인철 서울대 교수 (www.korea.kr)

8. 큐레이션 매거진 조선사람은 닛본징이 되어야 한다는 채만식의 친일행적

(https://ppss.kr/archives/55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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