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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예루살람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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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20세기의 핵심 개념 나치즘, 볼셰비즘으로 대변 되는 전체주의는 개인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평범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성을 상실한 아이히만을 보면서 생각하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전체주의의 악에 대하여 알아 보고자 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작가 소개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이었다.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으나 후일 하이델베르크로 옮겨가 야스퍼스의 지도로 1929사랑과 아우구스티누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근대성의 병폐인 전체주의와 정치의 상실에 관한 연구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는 급진적 악을,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에서는 일상의 악을 연구하여 20세기 철학에서 에 대한 연구가 중심축으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체주의의 기원

작가는 <전체주의 기원>을 통해 전체주의의 구성요소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요소들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성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에 따라서 정치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낸다.

아렌트의 글을 읽을 때 아렌트가 시대적 상황에서 던지는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관점보다는 철학적 관점, 삶의 깊은 중심에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악의 급진성은 설명할 수 없음으로 정의되고 있다. 전체주의는 대중에 의해서 탄생했다. 대중의 외로움은 급속한 가속화의 결과이다. 가속화가 되면 시간 위에 있는 존재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속도를 가지기 위해서 어떤 지점에 멈추고 싶어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바깥에 있어야 하는 어떤 혐오의 대상인 것이다. 혐오의 대상은 멈처져 있고, 자신은 그 가속화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에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악의 기원

근대 세계에 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근대가 기반하고 있는 이 세계가 이성적으로 이해할 만한 것이다. 라는 기본 전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악의 존재가 인간의 이성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위협하는 악은 인간의 잔인함이다.

아렌트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본성이 자발성이라고 보았다. 전체주의가 바로 이런 인간의 자발성 자체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는 인간 본성 그 자체를 파괴하는 체제이다. 이런 인간의 자발성에 대한 파괴는 언제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시작한다.

 

악의 급진성과 악의 평범성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악의 급진성<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악의 평범성을 다룬다. 아렌트에게 역사는 우연한 역사, 우발성 때문이지 어떤 의도적인 발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리하면 악의 기원이 아니라 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구성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악은 사회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악인은 처음부터 없으며 악한 의도를 실천하는 그 과정에서 악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참고 : 나무위키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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